[러시아/몽골 여행일기] 몽골 테를지 둘째날
아침 7시경 일어났다. 역시나 춥다. 온도는 영하 4도. 하늘에 눈이 가볍게 휘날리고 있었다. 난로는 화목난로였는데 아침에 보니 식어있었다. 아줌마가 어젯밤에 침낭을 괜히 챙겨준게 아닌가보다.
올름!
주인아줌마와 가이드 두명은 아침을 차리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주인아저씨가 아침에 우유를 짜고 왔는지 우유통을 들고 왔는데 통안에서 물에 불은 누룽지같이 생긴걸 계속 건져올렸다. 뭐냐고 물어보니 몽골어로 오름?, 올름? 이란다. 우유를 통에 놔두면 통 내부에 유지방이 붙어 자연적으로 생기는 버터같은건가보다. 생긴건 좀 비위상하게 생겼는데 별 냄새도 안나고 고소하니 맛있다. 빵에 발라먹으라는데 이쁘장한 몽골 가이드가 완전 좋아하며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많이 먹진 못함 ㅠ
아침은 간단하게 계란 후라이와 양고기 채소볶음밥 그리고 빵, 오름, 수테차 이렇게 먹었다.
밥을 먹고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8명 파티가 사진찍고 웃고 떠들고 하더니만 슬슬 갈 채비를 한다. 내 픽업기사는 점심먹고 나면 온다고해서 그때까지 기다리란다. 인터넷도 안되고 할것도 없는 이곳에서 5시간을 더있어야한다니 ㅋㅋ 정말 조용하고 여유로운 동네긴 한데 그런 여유로운 삶은 나하고는 맞지 않나보다. 하루밖에 안지났는데도 벌써 좀이 쑤심.
몽골 홍차 티백. 여긴 한국에서 커피마시듯 그냥도 먹고 수테차로도 먹고 요리에도 넣는듯? 암튼 홍차를 즐겨먹는다.
내가 계속 홍차만 마시니까 아줌마가 수테차 먹으라고 주심 ㅋ
오전에 딱히 할일이 없어 홍차마시며 빈둥대고 있으니 주인아줌마가 앨범을 가지고 왔다. 여기 온 여행객들의 사진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날짜를 보니 대략 2000년 초반부터 테를지에 터를 잡고 소를키우며 종종 관광객을 받으신 듯.
여행객들이 보낸 사진과 엽서를 차곡차곡 모아놓으셨다.
날씨가 흐리고 눈도 와서 그런지 사진이 칙칙하게 찍힌다..ㅠㅠ
심심할때마다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춥기도 많이 춥고 하늘이 흐려서 사진이 이쁘게 안나온다. 결국 몇장 안찍고 게르에 들어와 난로를 쬐며 티비를 봤다. 아줌마가 한국드라마 광팬인지 계속 한국드라마만 보신다.
분명 내가 아는 배우들이 나오는 한국드라마인데 처음보는 드라마다. 아침드라마인듯. 이런 막장스토리가 몽골에서도 먹히는것인가?ㅋㅋ 몽골어로 더빙이되어 한국말은 안들리는데 대충 입모양 보니 무슨 상황인지는 짐작이 간다. 딸내미가 알고보니 자기딸이 아닌듯 ㅋ
더빙 배우가 남자 1명, 여자 1명뿐인가보다. 배우들 목소리가 죄다 똑같음 ㅋㅋ 물론 우리나라도 더빙 배우가 1인다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최소한 목소리를 다르게 내던데.. 여긴 그런게 없나보다.
심심해서 밖에 나와 사진찍는데, 어제 하도많이 찍어서 딱히 찍을게없다보니 개도 찍고, 밥주워먹는 까치도 찍음 ㅡ.ㅡ 개한테 생 닭다리뼈를 준다. 으득으득거리더니만 어느샌가 뼈째 다 먹어치움.
그나저나 시간이 정말 안간다. 인터넷이 안되는 삶이 이렇게 힘든 삶일 줄이야. 인터넷 중독 말기인듯. 한 10년전에 여행다닐때는 스마트폰, 인터넷 없이도 가이드북 하나 들고 잘 돌아다녔는데.. 물론 인터넷까페에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ㅎㅎ 지금은 스마트폰 없으면 여행도 못할것 같다.
게르 안 책장에 사진이 있다. 주인아저씨 아줌마 젊었을때 모습인듯.
주인아줌마네 살림살이 구경. 2~3평 남짓 게르지만 집안에 기도하는 사당(?)까지 있다. 집안 살림 중 공산품은 한국제품이 심심찮게 있다.
집주인 아줌마 이름은 '가나'라고 했다. 아저씨 아줌마 이름 모두 가나란다. 아마 성을 말하시는듯?
몽골어로 더빙되어 무슨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드라마를 보며 기다리길 2시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만두인가보다. 아줌마가 냉동만두를 주섬주섬 꺼내셨다. 양고기만두인거같은데 안에 채소같은건 없고 오로지 고기다. 양고기 냄새가 심하게 나서 많이 먹고싶진 않았는데 아줌마가 한 15개정도를 주심..ㄷㄷ
주인아줌마랑 사진도 찍고
만두 먹음 ㅋ 만두를 토마토소스에 찍어먹었다.
간단히 만두를 먹고 마지막으로 테를지 산책을 하고오니 픽업기사가 왔다. 어제 왔던 아저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젊은 기사가 전기자동차를 끌고 왔다. 하이브리드도 아닌 100% 전기차를 최초로 타본 곳이 몽골이 될줄이야..
1박밖에 안했지만 정말 심심했던 테를지 안녕~
가기 전에 주인아줌마가 거대한 칭기스칸 동상이 근처에 있다고 가는길에 보고가란다. 말 안통해도 정말 신기한게 어떻게어떻게 다 이해가 됨 ㅋㅋㅋ 개신기 ㅋㅋ 그래서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으니까 픽업기사한테 가더니만 뭐라뭐라 말을 한다. 그러니까 픽업기사가 전화로 뭐라뭐라 하더니 날 바꿔주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이었음.
사장이 칭기스칸동상까지 가려면 20달러 더내라고하길래, 뭐 200달러도 아니고 2만원으로 하나 더보고가서 나쁠건 없지 싶어 좋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운전기사하고 쇼부치면 보통 10달러정도에 갈수 있다 카더라. 그냥 나한테 10달러만 달라고 해서 자기 10달러 먹고 몰래 갔다왔어도 됐을텐데.. 이 융통성없는 기사는 그냥 나랑 쇼부쳐서 가지 그걸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하고있다 ㅋㅋㅋ 생긴건 약간 양아치스탈이었는데 알고보니 완전 착해빠졌음ㅋㅋㅋ
징기스칸동상 앞 주차장에 있는 작은 기마병 동상들.. 작다고 썼지만 칭기스칸 동상에 비해 작은거지 사람보다 큼 ㅋ
칭기스칸 동상. 사진 말 머리 위에 살짝 점같은거 찍혀있는게 사람임.
칭기스칸 동상은 생각보다 많이 컸다. 주변에 별다른 건물도 없고 허허벌판이라서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칭기스칸 동상 말 머리 위에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갈 수 있지만 바람도 많이불고 추워서(사실은 입장료를 따로 받길래...)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고 왔다. 딱히 올라가서 멀리 본다 하더라도 어짜피 평원만 있을거같아서 ㅋ 근데 막상 한국오니까 왜 안올라갔을까 후회도 좀 되고 한다.
울란바토르 가는길에 마주친 평원. 이동네도 시베리아와 비슷하게 평원이 끝도없이 펼쳐진다.
양 보호구역.
한적한 고속도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몽골식 키릴문자로 울란바토르라고 쓰여있다.
차안에서 본 울란바토르 시내 모습.
2시간여를 덜컹거리는 2차선 고속도로를 달려 다시 울란바토르에 왔다. 다른데는 차보기가 힘든데 울란바토르에는 차가 천지다. 저녁시간에는 차도 많이 밀림. 숙소앞에 도착해서 기사양반한테 팁이라고 5000투그릭을 줬더니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내평생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은 살면서 처음본듯. 내 가방을 막 들어주려고 하길래 괜찮다고 하는데도 계속 땡큐땡큐 하면서 들어준다고 난리였다.
게스트하우스 도착하니 6시가 좀 안된시간이었다. 도착해서 사장을 만나 이틀밤 게스트하우스 숙박비와 징기스칸 왕복비용 그리고 마지막날 공항 픽업비용까지 토탈 68달러를 냈다. 잠깐.. 테를지 1박이 70달러였는데 이거 비싼여행이었네 ㅋㅋㅋ
숙소에 오니 어제 테를지에서 만난 단체여행객들이 이미 와서 씻고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와이파이 잡아 인터넷좀 하다가 밥을 먹으러 나갔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제 같이 테를지로 떠날때 아가씨들이 말해준 북한식당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평양식당 가는길에 본 몽골시내 모습. 여기저기 고층건물이 건설중이었고 상당수는 한국 건설사들 마크가 박혀있었다. 한국 건설사들이 몽골에 많이 진출해있는듯..
평양식당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 20분정도 거리. 버스를 타도 되겠지만 하루동안 너무 조용한 동네에만 있어서 그런지 북적거림을 느끼고 싶어서 걸어갔다.
드디어 고려민족식당 발견
GPS에 구글맵 연동해서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라마다호텔있는 사거리에 도착. 여기서 위로 좀 올라가니 작은 호텔 1층에 고려민족식당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안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곤 나 혼자다. 농담안하고 좀 무서웠음. 식당 분위기 자체도 일반 식당이라기보단 약간 90년대 술집같은 분위기인데다가 한창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니, 전쟁하니 어쩌니 하며 북핵으로 떠들석하던 시기라서 더더욱.. 뭐 설마 나같으놈 납치하겠어 싶어 자리에 앉고 회냉면을 시켰는데 23000투그릭이다.
사진찍으려고 하니까 사진찍으면 안된단다. 막 찍게 해달라고 애교떠니까 콧웃음까지 친다 ㅋ 좀 아쉽긴 하지만 뭐 괜히 타지에서 그것도 북한식당에서 트러블 일으킬 필요 있나 싶어서 안찍고 그냥 먹음.
울란바토르에서 쉽게 볼수 있는 노면트램. 얼핏 보면 그냥 버스랑 똑같다.
다 먹고 슬슬 나오려는데 한국인 연인으로 보이는 팀이 한팀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아예 종업원이 안보이는 창가 구석에 앉더라. 나도 그럴걸 ㅠㅠ 사진도 못찍고 ㅠㅠ 아무튼 먹고 다시 걸어서 숙소에 온 후 한 30분 쉬다가 8시경 징기스칸 광장 야경도 보고 먹을것도 좀 살겸 다시 나왔다.
밤의 울란바토르 거리는 진짜 농담 하나안하고 개무섭다.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은 적고 젊은 남자애들이 가죽바지 입고 떼로 몰려다닌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몽골보다 러시아 밤거리가 무서울거같았는데 러시아가 오히려 더 안전하게 느껴질 지경.
살인도 많이 일어난다고 하고 여행자들 린치도 많이 당한다고 해서 최대한 현지인인척 하려했는데 아무래도 그동네 패션이랑 내 패션은 좀 차이가 큰가보다.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다 날 쳐다본다 ㅠㅠ
징기스칸 광장의 야경. 몽골 독립영웅 수호바타르가 이 광장에서 독립을 선포해서 수호바타르 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최근 징기스칸 광장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징기스칸 광장 양 옆에는 이쁘장한 건물들이 있음. 대충 보니 은행, 박물관 뭐 그런종류인듯.
술집에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고싶었는데 위험할듯 해서 징기스칸 광장 찍고 바로 턴해서 마트도 안들리고 숙소 근처 빵집에서 빵을 2500투그릭정도에 3개 샀다. 올때 버스를 타고 오려했는데 숙소에 돈을 다 두고 주머니에 500투그릭밖에 안남아있네??!! 버스비가 얼마인지 잘 몰라서 혹시 모자르면 쪽팔릴까봐 빵봉다리 흔들면서 걸어갔다.
숙소에 들어올 때쯤 테를지에서 본 남녀혼성여행파티 친구들이 오늘 밤에 집으로 가는지 짐을 싸서 나와있었다. 간단히 인사나누고 숙소에 들어와서 맥주랑 홍차랑 빵 하나 먹고 오랜만에 인터넷되니까 폰게임도 좀 하고 잤다.
찹쌀도넛같은건 이미 먹고 페스츄리랑 와플남았다.
7일차 총 경비.
홍고르 게스트하우스 2박 및 공항픽업비용 - US$48 (\57,000)
칭기스칸 동상 관람 추가비용- US$20 (\24,000)
울란바토르 픽업기사 팁 - ₮5,000 (\2,500)
북한식당 회냉면 - ₮23,000 (\11,500)
빵 3개 - ₮2500 (\1,250)
합계 \96,250